프라그의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9일기도
유튜브 기도문 영상 |
기도문 전문 |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9일 기도
아기 예수님, 저는 하느님이신 당신이 저를 도와주실 것을 굳게 믿고,
당신의 거룩하신 은혜 얻을 것을 확신하고 바라며,
이 요긴한 사정을 당신의 거룩한 모친을 통하여 당신께 봉헌하오며 도움을 청하나이다.
예수님, 저의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남을 나와 같이 사랑하리이다.
제가 지은 죄를 깊이 통회하오니,
착하신 예수님, 제게 힘을 주시어 이 죄악을 물리치게 하여 주소서.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모든 괴로움을 받겠사오며,
죄를 범치 않기로 굳게 결심하나이다.
이후부터는 당신을 충심으로 섬기겠사오니,
오! 거룩하신 아기 예수님, 이 요긴한 사정에 있어 저의 도움이 되어 주소서.
(은혜 청함)
오! 프라그의 거룩하신 아기 예수님,
당신 어머니의 힘있는 전달과,
하느님으로서 가지신 전능하심의 한없는 자비를 의지하여 애원하오니,
제가 이 9일 기도로써 열심히 청하는 것을 들어 허락하여 주소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그리고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들과 함께
당신을 영원히 모시고 흠숭하는 은혜를 주소서.
오!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 제 기도를 들어 주시고 제가 청하는 바를 허락하여 주소서(3번).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 감사기도
기도문 유래 |
스페인에서 체코의 프라그까지
프라그의 은총의 아기 예수상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그시의 '승리의 마리아 가르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발현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대로 재조된 이 성상이 프라그의 이 수도원에 모셔지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Cordoba)와 세비야(Seville) 사이에 있는 과달키비르(Guadalqivir) 지역에는 옛적에 스페인 땅에서 유명했던 수도원이 있었는데 회교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그후에는 싸늘한 페허 위에 몇 명의 수도자들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이 깊은 한 수사가 있었는데 그가 어느날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을 때였다. 유별나게 우아한 한 아이가 갑자기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아이는 그 순간 그에게 많은 기쁨을 선사하며 말했다.
"요셉 수사님, 정말 비질을 잘하시네요. 바닥이 눈부시게 번쩍이는데요. 하지만 지금 성모송을 기도하실 수 있어요?" 그러자 그는 약간 당황하였지만 사랑스런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였다. "그럼" "오, 그럼 그걸 바로 기도해 주세요. 제발 당장요."
두 손을 모으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며 이어나갔는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에 이르렀을 때 그 아이가 갑자기 "그게 바로 나예요" 라고 외쳤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아이는 바로 아기 예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자 곧 그 아이는 사라져버렸고 그는 무척 섭섭해했다. 이후 요셉 수사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찼고 그리움에 지쳐 죽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많은 고독의 날들이 지나갔지만 그 아기가 보인 작별의 미소는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불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 끝없는 침묵을 깨뜨렸다. 그 목소리는 요셉 수사에게 정중하게 주문했다. "내 모습대로 밀랍 인형을 만들어 주세요." 라며 그 예쁜 목소리는 그가 가진 조소 기술을 보여주길 주문했다. 그는 재료를 부탁하러 곧바로 수도원장에게 달려갔다. 거룩한 의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 일을 시작하여 사랑에 넘치는 두 손으로 그 아기의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그리움은 채워졌고,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아기가 사라진 뒤 그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누추한 방 안에 한 무리의 천사들에 둘러싸여 그 하늘 아기가 또다시 나타났다. 그는 문지방에 서서 말했다. "납니다. 내가 왔어요. 이제 이 작품은 완벽하게 진행될 수 있어요. 나를 쳐다봐요. 이제 당신은 내가 지닌 천상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밀랍에 새길 수 있어요." 그는 그 아기의 모습대로 밀랍에 형을 떴고 황홀한 기쁨으로 가득찼다. 밀랍 인형은 혼동할 만큼 그 고귀한 손님과 닮았으니 작품은 성공했던 것이다. 감동에 젖은 그는 무릎을 꿇었고, 두 손에 머리를 파묻고는 이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영원한 사랑이 그에게 입맞춤했고, 천사들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갔다. 수도원장은 성대한 행렬을 갖추어 그 밀랍상을 성당에 모셨다.그런데 그 수사가 죽은 다음날 밤, 요셉수사가 수도원장 앞에 나타나 말했다.
"부족한 제가 만든 이 아기 예수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 년 후에 도나 이사벨라 후작 부인이 와서 이 천상 아기를 모셔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곧 따님인 마리아 만리케쯔에게 결혼 선물로 주게 될 것이므로 여러분은 이후에도 언제나 사랑과 존경을 지니고서 이 아기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이 아기를 고향에서 멀리 떨러진 머나먼 보헤미아 지역으로 모셔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 프라그에서 아기 예수는 무수한 이들의 경배를 받을 것이며 암담한 날들에는 도움을 많이 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선택한 그 땅에 은총과 평화와 자비가 내릴 것이며 이 아기는 그 나라를 사랑과 지혜로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보헤미아 민족은 그의 민족이 될 것이며 이 아기는 그 민족 한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영원한 왕이라 불릴 것이며 이 왕은 은총으로 그들에게 충분한 보답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기 왕은 모든 민족과 나라들로부터 '은총이 충만한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 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이 아기 예수님께 청원하는 모든 이에게 지구 끝까지라도 축복과 도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한편 도나 이사벨라의 딸인 마리아 만리케쯔(Maria Manriquez)보헤미아의 귀족, 브라티슬라 폰 페른스타인(Vratislar von Pernstein)과 결혼할 때 그녀의 가문에서 이미 '오랫동안 기적을 행하는 아기' 로서 공경되며 귀중한 가보로 전해지던 이 아기예수상을, 오래 전에 요셉 수사가 예언한 대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시댁이 있는 보헤미아로 가져왔다. 그리고 마리아 만리케쯔는 그것을 다시 자신의 딸, 마리아 폴리세나(Maria Polixena)가 영주 아달베르트 폰 롭코비츠(Adalbert von Lobkowitz)와 결혼할 때 선물하였다. 그런데 1623년 남편이 죽음으로써 과부가 된 후에도 폴리세나는 돈독한 신앙생활과 이웃사랑으로 생애를 보냈는데 그녀는 특히 프라그 지역에 위치해 있는 승리의 마리아 가르멜 수도원 수사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당시 수사들은 그 수도원의 창설자요 후원자며 가장 큰 은인이었던 황제 페르디낭드 2세가 왕궁을 비엔나로 옮긴 이후 커다른 곤경에 빠져 빵 한 조각도 먹기 힘든 극심한 빈곤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 슬픈 상황을 전해 들은 롭코비츠가의 영주 부인 폴리세나는 자기 스페인 선조의 가보인 값비싼 보옥으로 된 아기 예수상을 그 수도원에 주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그 예수상을 주면서 마치 예언자적인 억양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아기 예수님을 공경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스페인에서 옮겨져 프라그에 정착하게 된 이 아기 예수상은 약 60Cm 정도의 크기에 나무로 조각되어 그 위에 밀랍이 씌워져 있다. 세 살 정도의 아이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값비싼 대관식용 외투를 걸치고 있는 머리에는 아주 큰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 씌여있다. 왼손에는 십자가가 달린 지구의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는 듯 위로 들고 있고 '하느님의 미소'를 머금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마리아 폴리세나의 말은 사실로 이루어졌다.
이 천상 아기는 공경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상한 양부, 강력한 보호자, 충실한 긴급구조원으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 가르멜 수도원은 영신적이고 물질적인 재화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기도자들이 그 수도원에 몰려옴으로써 수도원의 상황은 무척 호전되었다. 특히 그곳의 수련자 씨릴은 중대한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놀라운 도움을 받고는 아기 예수님을 대단히 공경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30년 동안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보헤미아도 전쟁에 휩쓸렸기 때문에 이 수도원은 또다시 몹시 어려운 시기를 지내야 했고 이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은 침체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수련소가 독일의 뮌헨으로 옮겨져야만 했고 수사들은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의 신성함은 모욕당했으며, 더구나 1631년 작센 군대가 이 성당을 약탈하고 아기 예수상을 제대 뒤에 내팽개쳐버려 팔이 부러진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뒤 예전에 수련자였던 씨릴이 사제가 되어 프라그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먼지에 뒤덮힌 아기예수상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했다. 그는 그런 가운데 이 같은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나를 불쌍히 여기세요. 그러면 나도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내 손을 되찾아 주세요.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평화를 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경배하는 것처럼 나도 여러분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는 그 즉시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훼손된 예수상을 고치게 해달라고 청원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그 성상은 대제대의 감실 위에 모셔져 공경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도 공동체 식구들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도 이 은총의 아기에게로 나아왔다. 더욱이 씨릴 신부 덕택에 아기 예수님의 대제대 뒤에 자신의 경당을 가지게 되었고 예수님의 성명 축일에 이 경당이 축성되면서 그 이후 매년 1월이면 '은총을 풍성히 내려주시는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 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1655년 4월 4일에는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프라그의 부주교 집전으로 성대한 대관식을 가졌다.
이 사랑의 불길은 사방으로 번져갔다.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을 공경한 사람들 가운데 오스트리아의 여왕 마리아 데레사는 프라그를 방문하여 승리의 마리아 성당을 찾아가 아기예수님께 많은 보석이 박힌 초록의 벨벳옷을 입혀 드렸다. 그리고 프라스의 성 요셉의 가르멜 수녀들은 밀랍으로 이 예수상의 모조품을 만들었고, 데레사 성녀의 가르멜 수녀들도 1737년 11월 25일이 사랑스럽고 자그마한 형상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는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간직했고 갖가지 색깔의 비단으로 장식했다. 또한 수많은 수도원들이 이들의 신심을 본받았고 이렇게 해서 온 세상에 아기 예수님 공경이 급속히 퍼져 나가게 되었다.
현 시대에 프라그의 아기 예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1741년, 프라그 시가지가 적에게 점령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약탈이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갑작스런 공격으로 탈취당한 한 도시가 이토록 거의 손상당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집집마다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 상본을 문에 걸어두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영적, 육체적인 모든 재해에 대해 어떠한 절망도 있어서는 안된다. '은총에 찬 아기' 는 삶의 어떠한 상황에도 축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이다.
1761년에 출판된 옛 책자에도 이미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은총에 찬 이 성상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이들은 누구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도움을, 우울할 때는 위안을, 빈곤할 때는 도움을, 불안할 때는 안정을, 절망할 때는 희망을, 병들었을 때는 건강을 얻게 된다. 은총에 가득 찬 이 성상의 자비로운 두 눈은 온통 사랑의 불꽃을 내뿜을 것이며, 입가의 미소는 감미로움에 젖게 하고 그 아름다움은 모든 감정을 압도한다.
... 이 놀라운 은총의 아기에 의해 치유되지 않은 것은 없다. 이 아기는 적대감을 없애며, 갇힌 자를 해방하고,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이를 구원하며, 뉘우칠 줄 모르는 죄인을 회개시키며, 자녀가 없는 이들에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축복을 내려 준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준다."
이에 대한 증거는 최근의 일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병자와 불행을 당한 자, 실업자, 돈 없는 자, 뉘우침 없는 죄인, 추방당한 자, 감옥에 갇힌 자, 길을 잘못든 자에 대한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의 도움이 그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가득찬 기도와 함께 프라그의 아기 예수 메달을 아픈 부위에 둠으로써, 12시간의 로사리오 기도를 함으로써, 9일 기도를 행함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을 찬미하는 미사와 영성체를 통해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상의 의사들이 여러분들의 치유에 의혹을 품는다 해도 이 하늘나라의 의사는 여러분을 여전히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성인들 중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34년간 은둔생활을 했던 예로니모 성인(342-420년)과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1090-1153년) 그리고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의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은 유명한데 특히 프란치스꼬 성인은 최초로 구유를 꾸며 예배한 성인으로 유명하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1195-1231년)은 아기 예수님의 위대한 경배자이며 아기 예수님을 팔로 안아볼 수 있었다.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 역시도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이 대단히 깊어 그 성상 없이는 절대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기 예수님께 대한 이러한 신심은 오늘날까지도 가르멜 수도원의 특징이 되어 있다.
기도문 출처
출처 :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펴낸이 하 안토니오. 아베마리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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