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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야기/아르마 루치스(가톨릭과 다른종교)

[아르마 루치스] 1. 가톨릭을 비난하는 것들로 부터

by jason1108 2020. 3. 17.

아르마 루치스

1. 가톨릭을 비난하는 것들로 부터




 

  가톨릭과 타종교간의 건강한 대화










  1.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요?








  2. 면죄부와 연옥에 대해







  3. 중언부언 기도 & 성상숭배?







  4. 개신교 인사들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의견 



4-1. 마르틴 루터


  교황의 대사권(면죄부)에 굉장한 능력이 있어 (이것은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빠진 생각이다" (95개조의 제75조)


  나는 그러한 의견들을 견지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는 거룩한 동정녀로부터 용서를 간구해야할 것이다" (제75조 설명).


  "에페소 공의회는 신앙에 어떤 새로운 것도 정한 것이 아니며, 네스토리우스의 새로운 생각에 대하여 전래의 신앙을 지킨 것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조는 이미 처음부터 교회 안에 있었고 복음, 즉 성경에 드러나 있다•••이러한 결정이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확정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마리아는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이토록 많은 은총을 입고, 은총이 가득했다." (공의회와 교회)


  루터는 아베 마리아라는 말에 관하여 "첫째로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거룩하고 선으로 충만하며 죄로부터 자유롭고 하느님에 의해 자신에게 해로운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 되고 있다. 마리아는 예견과 지혜의 은총을 받은 '대 예언자'이며 모든 사도들, 예언자들 보다도 더 많이 아는 분이다. 마리아는 찬미 받아 마땅하며, 아무리 찬미 받고 영광을 입어도 지나침이 없음은 단연코 확실하다. 그 영예는 저토록 드높게 빛나고 지상의 모든 여인 위에 있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것이다. 우리는 이 어머니께 영광을 드려야 하며 그 어머니가 낳으신 하느님을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부터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529년 주님 탄생 예고 축일에 즈음하여 루카 복음 1장 26-38절을 해설).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성모께서 몸소 저에게 지혜의 영을 주셔서 당신의 찬가를 유익하고도 철저하게 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와 함께••• 아멘" (루터 선집 제3권, p. 274-275). 루터가 이 마리아의 찬가 논문을 완성시킨 것은 1521년 3월 10일로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파문당한 후였기 때문에, 우리는 루터의 성모관을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그들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과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 관해 말한다" (루터 선집 제3권, p. 321).


  그래서 그들은 루카 복음 6장 21절의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굶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위로의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루터 선집 제3권, p. 322).




4-2. 츠빙글리


  스위스 개혁 교회의 창시자인 츠빙글리는 신앙해설An Exposition of the Faith라는 논문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의 영예를 빼앗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창조주의 권능을 그녀에게 돌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녀 자신은 그러한 경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녀가 다른 피조물을 위해 더욱 더 높게 찬양받고 그녀가 하느님이신 그녀의 아들에게 더욱더 경건하게 전념한다면••• 동정녀가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려야만 하는 것이 내 판단으로는 정당하다."



  "그대는 두 사람의 아담을 보게 될 것이다. 구속받은 자(아담)와 구속한 자(예수님)•••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4-3. 칼뱅


칼뱅은 마태오 복음 13장 53절부터 58절과 마르코 복음 6장 1절부터 6절의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우리가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형제들이라는 그 단어는 어떤 친척 관계라도 나타내기 위하여 히브리어 풍에 일치하여 사용된다. 따라서 엘비디우스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때때로 (성경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많은 아들들을 가졌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엄청난 무식을 드러내었다"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Matthew, Mark and Luke, First Volume. p. 215).


  칼뱅은 요한 복음 7장 1절부터 8절의 해설에서 다시 고대 히브리인들의 언어 습관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형제들이라는 그 단어 아래 친척 관계가 되는 것은 무었이든지 히브리인들은 모든 사촌 형제들과 다른 친척들을 포함시켰다"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Matthew, Mark and Luke, Second Volume. p. 89).


  칼뱅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 속에서 시종일관 가톨릭의 교리를 비판하고 있으나, 한국의 현대 개신교와는 달리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지 않고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칼뱅은 "우리는 거룩한 동정녀를 본받아 곤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묻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강요 하권, p. 479) 라고 하며 성모님을 거룩한 동정녀라 부른다. 또 칼뱅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성모(the holy mother of Christ)라고 부른다.(p. 392)


  칼뱅은 에페소(431년), 칼케돈(451년) 공의회를 거룩한 공의회들이라면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공의회들은 앞서 말했듯이 모두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로 천명한 공의회이다. 이와 같이 소위 종교개혁가의 루터나 츠빙글리나 칼뱅 모두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고 다만 가톨릭 신자들의 과도한 성모공경에 대해서 경계의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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